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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있는 노벨의학상 수상...오무라式 연구자...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5-10-20     조회 : 1,511  

끊임없는 실패, 흉내 없는 연구방식
"남 따라하면 그걸로 끝, 한계 넘을 수 없어"


 

"남을 흉내 내면 그걸로 끝입니다. 남을 따라 하기 시작하면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실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공 뒤에는 몇 번의 실패가 따릅니다. 젊은 연구자들이 그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지난 5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대 특별영예교수의 연구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남을 흉내 내지 않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스포츠에 더 열중하는 등 엘리트와 거리가 멀었던 그가 신약을 개발해 열대 지역에 사는 10억 명의 사람들을 기생충 질병에서 해방시키며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신 덕분이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남을 따라하지 말아라. 연구비가 없다면 지혜를 짜내라. 지혜가 없다면 땀을 흘려라"라고 가르친다.

 

일본 외신에 따르면 그는 지난 5일 밤 기타사토 대학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키를 즐겨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선배들이 홋카이도에서 몇 번이고 연습했지만 우승을 하지 못했다"며 "당시 지도교수가 '홋카이도에 가는 것은 그만둬라'라며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연습을 이어나갔고 결국 우승했다. 연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흉내내면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는 학생때부터 생각해온 생각"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오무라 교수의 흉내없는 연구방식은 학창시절부터 남달랐다. 오무라 교수의 형제들을 인터뷰한 일본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그의 남동생 타이조 씨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형의 책상 위는 늘 먼지투성이였다"면서도 "농기구를 사용해 밭의 풀을 제거할 때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고 나름의 원리를 설명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며 새로운 방식을 고수했던 형의 과거를 회상했다.

 

남을 따라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은 일본이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비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청색 발광다이오드 개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3명의 일본 과학자 이사무 아카사키 나고야 대학 교수, 히로시 아마노 나고야 대학 교수, 슈지 나카무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의 수상 비결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수상 당시 3명의 과학자들은 "유행하는 연구에 매달리지 않았다"(아카사키 교수),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하지 않는 주제를 하려고 했을 뿐이다."(아마노 히로시 교수), "어려운 책 읽을 시간에 물건을 만들어 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나카무라 교수)라고 말한 바 있다.

 

◆ 오무라 교수 개발 이버멕틴, 10억 명의 사람 구하다

오무라 교수가 노벨상을 받게 된 계기는 1979년 개발한 '이버멕틴'이라는 신약이다. 이 약은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 유행하는 '회선사상충'을 박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0억 명의 사람들을 기생충병에서 구하는 특효약으로 현지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대부분의 약은 지속적인 섭취로 효과를 보이지만 이 약은 1회 섭취로도 효과가 뛰어나다. 오무라 교수는 "지극히 안전한 약으로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도 쓸 수 있다"며 열대지방의 시골 오지에 적합한 약임을 강조했다.

 

일본 외신에 따르면 오무라 교수는 시즈오카 현의 한 골프장 인근에서 가져온 토양을 배양하다 '이버멕틴'을 발견했다. 외출 시 언제나 작은 비닐가방과 숟가락을 챙겨 각지의 흙을 채취하고 그 안의 균을 분리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축동물의 기생충 구제에 효과를 발휘하는 물질을 발견한 것.

 

전국 각지에서 1년에 2500번의 채취에서 균을 배양하고 평가하지만 대부분 균은 활용하지 못한다. 반복적이고 힘든 작업 속에서 발견한 기적의 균이었다.

 

직접 미국 제약사를 돌아다니며 연구비를 마련한 그는 이 균을 통해 이버멕틴 개발에 성공했다. 이 약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중남미 등 열대 지역에 사는 10억 명의 사람들을 기생충병에서 구하는 특효약으로 이어졌다.

 

그는 "WHO(세계 보건 기구), 미국의 제약 기업, 세계 은행, 그리고 각국 및 NGOs까지 폭넓은 협력이 있던 성과"라고 말했다.

 

◆ 연구비 없어 직접 발로뛰어 마련…후배들에게도 "남 따라하지 말라"

오무라 교수의 경력은 이색적이다.  야마나시현의 자연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학창시절 공부보다 스포츠에 열정을 쏟았고 스키로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또 교편에 서다 나중에 연구자의 길을 걷는 등 보통 연구자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대학 졸업 후 교사를 꿈꾼 그는 우연한 기회에 도쿄 스미다 공업 고등학교 야간부 교사가 됐다. 그는 이곳에서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를 만났다.

 

기말고사 시험 감독을 하게 된 그는 한 학생이 부근 공장에서 일을 막 마치고 교실로 뛰어 들어오는 광경을 목격한다. 손 씻을 겨를도 없이 기름이 잔뜩 묻은 손으로 시험을 치는 모습에 그는 "학생들은 이렇게 공부를 하고 있구나. 대학을 졸업한 나는 무엇을 하는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는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졌다"고 회상했다.

 

도쿄 이과대 대학원에 진학 후 그는 키타자토 연구소에서 일하며 아침 6시에 출근해 연구하는 등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국내 연구에 한계를 느낀 그는 1971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그는 미국 최대학회인 미국화학회 회장으로 취임하고 미국에서 세계최고 레벨의 산학네트워크를 가지게 되는 등 높게 평가됐다.

 

그러나 귀국 후 키타자토 연구소에서 주어진 연구실은 약소했다. 연구자는 석사 수료생 2명, 학부 졸업 2명, 고교졸업생 등 5명이었다. 미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연구환경이었지만 그는 귀국 전 미국 대형 제약업체와 연구비 협력을 체결해 연구자금을 스스로 마련했다. 

 

또 그는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격려와 '남을 따라하지 않는 정신'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선행 사례를 모방하는 경우도 있지만 흉내를 내면 한계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으로 '이버멕틴'을 발견했다. 

 

물론 연구에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는 '조모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교직생활로 바쁜 부모님대신 할머니 손에 자란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생각하라'는 조모의 가르침을 모토로 연구에 매진했으며 연구 갈림길에 섰을 때도 할머니의 말을 되새겼다고 한다.

 

◆ "성공 뒤에는 몇 배의 실패가 존재, 끊임없이 실패하라"

미국 객원교수로 부임하며 미국 거물급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구비를 모아 사회에 환원하는 미국식 스타일을 배운 그는 이버맥틴 등 약의 매출에 따른 특허 수입을 새로운 연구나 의료 발전에 쏟고 있다. 사이타마 현 내에 키타자토 연구소 메디컬센터(병원)를 세웠으며 자금난을 겪고 있던 키타자토 연구소 경영 개혁에도 주력했다.

 

이 외에도 그는 야마나시 현의 과학진흥을 위해 야마나시 과학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 아카데미는 2015년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평생의 연구에서 한 가지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어려운데 다양한 약을 개발한 비결에 대해 그는 "이 성과는 공동연구의 덩어리"라며 "다양한 분의 도움이 있어서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내가 한 것은 대부분 실패다. 잘 하지 못하거나 실패했지만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다시 하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의지가 됐다"면서 젊은 연구자들에게 "성공 뒤에는 몇 배의 실패가 있다. 끊임없이 실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지영/기자/대덕넷/2015.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