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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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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싸우고 웃으며 헤어질 때다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5-07-05     조회 : 1,790  

삼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천하대세는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합쳐진 지 오래된’ 한국 정치에도 균열이 오고 있다. 3당 합당으로 태어난 ‘1990년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 보수가 안정적 패권 유지를 위해 ‘지역’을 기반으로 반호남 연합체인 ‘민주자유당’을 만든 것이 1990년이었다. 1963년 ‘물리력’을 기반으로 태어난 ‘민주공화당’ 이후 27년 만이었다. 다시 25년이 흘렀다. 물리력의 시대는 끝났고, 지역의 시대도 약해지고 있다. 패권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화당이 ‘안보보수’의 시대를 열었다면, 민자당은 ‘시장보수’의 시대를 열었다. 냉전이 끝나는 시점이었다. 그 이후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기술혁신’과 ‘글로벌’은 지난 25년을 상징하는 단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오직 ‘북한’과 ‘돈’으로만 보는 낡은 생각으로는 패권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사회경제의제’에서 상대적으로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사회적 보수’인 ‘신보수’의 등장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구보수’와 ‘신보수’를 상징하는 박근혜와 유승민이 충돌하고 있다. 

 

신보수를 향한 구보수의 기습

 

‘필연은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에드워드 H. 카의 통찰대로 피할 수 없는 ‘권력투쟁’은 국회법 개정안 거부라는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났다. 1월12일 김무성 대표가 보던 수첩에 있던 메모, “청와대 문건 파동의 배후는 K·Y,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다”가 살짝 들킨 필연의 얼굴이라면 이제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올 것이 온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조용히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원만한 당·청 관계를 위해 유승민 원내대표도 거취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전쟁을 택했다. 유승민이 최종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무성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노선과 세력을 상징하는 두 사람을 동시에 쳐내지 못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봤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범하게 상대 본진 한가운데를 가르고 들어왔다. 기습에 허를 찔린 이른바 ‘K·Y’ 체제는 당황했다. 그러나 선제공격을 했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 싸움은 대통령의 패배로 끝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레임덕을 겪고 있었다. 첫째, 사람이 거부당했다. 이미 국회의장, 당대표, 원내대표 선거에서 연속으로 참패했다. 둘째, 정책이 거부당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국회 연설은 더는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셋째, 기밀이 새 나갔다. 작년에 문건 파동으로 청와대의 민낯이 드러나는 위기를 겪었다.

 

누가 누구를 배신한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한명 두명 떨어져 나가 친박은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 대통령 취임 후 불과 1년 남짓 만이었다. 반환점을 돌지 않았는데도 이런 지경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어렵다. 이대로 간다면 총선에서 지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새누리당이 이긴다고 해도 미래 권력에 끌려 다니는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통령으로서는 승부를 건다면 지금밖에 없다고 봤을 것이다. 

 

“저도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도덕적 공허함만 남았다”며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거칠게 공격했다. 상상도 못한 대통령의 반격에 새누리당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이미 2008년 총선에서 이재오, 이방호, 박형준, 정종복을 마치 찍어내듯이 떨어뜨린 박근혜의 힘을 눈으로 본 적이 있는 의원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누구든 대통령과 척을 지면 두렵기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시킬 힘은 잃었을지 몰라도 ‘떨어뜨릴’ 힘까지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대세를 되돌리지 못하면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초조감이 ‘전쟁’을 불렀다. 위험한 도박이다. 실패하면 레임덕은 더 빨라지고 여당을 분열시켜 총선 패배의 빌미만 제공할 수도 있다. 2005년 7월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의 승부수를 던졌다가 레임덕만 가속화시키고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에서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고 만다. “내 딴에는… 수류탄을 던졌는데 그게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렸다. … 내가 그때 내다본 것은 상대방이 상당히 난처해지고 내부에서 갑론을박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일사불란하고 우리 쪽은 갑론을박이 돼 버렸다. … 그러니까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감당할 수 없게 됐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과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을 좌절시켰던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국회법 개정안 거부’로 촉발된 승부에서도 이길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싸움이다. ‘명분’도 없고, ‘세’도 부족하고, ‘여론’에서도 밀리고, 메르스 사태로 ‘타이밍’도 좋지 않은데, ‘방식’도 너무 거칠다. 총대를 메고 나선 정치인들 중 참신한 ‘인물’도 없는데, ‘언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 하나 유리한 게 없다. 만약 유승민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만두게 할 방법이 없다. 이미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기도 했지만 다시 열린다고 해도 개혁적 보수의 상징인 유승민을 ‘이런 식으로’ 버리면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다시 신임을 받을 것이다. 그 순간 박근혜 대통령은 또 한번 불신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사퇴시키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친박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김무성 대표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서청원, 이인제, 김태호, 이정현 최고위원이 사퇴하면 간단하게 붕괴된다. 그런 다음에는 유승민 비상대책위원회로 넘어가지는 않을 테고, 결국 전당대회를 다시 열 수밖에 없는데 친박이 이길 수 있을까? 김무성 대표가 재신임을 걸고 다시 나온다면 청와대가 누굴 내세워도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차기 대권으로 유혹한다고 해도 선뜻 나서려는 얼굴을 찾기도 쉽지 않다. 찾는다고 해도 1년 사이에 줄어든 지분만 확인하게 될 것이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승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길 수 있을까
명분도 없고, 세도 부족하고
여론 밀리고, 타이밍도 안 좋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올 수 있다
 

 

새누리당의 위기, 보수의 위기는
‘2016년 체제’ 만들 절호의 기회
이념·계층·세대·지역에 기반 둔
다당제로의 경쟁체제 전환 위해
‘중선거구제’로 바꿔야 할 시점

 

 

‘박근혜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김무성과 유승민을 갈라놓는 것이다. 김무성으로 하여금 유승민의 사퇴를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 뒤에 ‘새로운 당·청 관계’를 위해 청와대가 원하는 인물이나 아니면 적어도 청와대가 비토하지 않는 인물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결국은 ‘공천 싸움’이기 때문에 공천 지분을 넘기라고 요구할 텐데, ‘유승민을 버린’ 김무성 대표를 뒷받침해줄 우군이 그리 많지 않게 된다면 버티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전당대회가 다시 열린다면 분열된 비박보다는 똘똘 뭉친 친박의 승리 가능성도 높아진다. ‘안전한’ 대구로 내려간 김문수를 청와대가 내세운다면 승부는 어떻게 될까? 

 

그런데 정말 유승민이 사퇴하지 않고 김무성 대표 체제도 붕괴시키지 못한다면 청와대와 친박이 준비하고 있는 ‘플랜B’는 뭘까? 대통령의 탈당? 아니면 분당? 물론 그런 시나리오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상식적으로는 분열에 의한 총선 패배가 될 것이고 대통령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 놓이게 될 것이다. 청와대가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면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그리고 ‘플랜B’는 무엇인가를 충분히 검토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전략 시나리오를 검토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의 힘만 믿고 우발적으로 시작된 내전(?)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금은 ‘박근혜 시대’가 저물고 있는 중이다. 국민적 지지가 예전만 못하다. 미래전략가인 조지 프리드먼 ‘스트랫포’ 회장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나 이라크,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세상 사람들은 모두 미국이 뭘 할 것이냐고 묻는다.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묻지 않는다. 모두들 미국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세계가 위기에 처할 때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미국이 … 무언가 해야 한다고 당연히 요구하고 있지 않느냐. … 한국의 경우를 보자.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누구에게 얘기할 것 같은가. 바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뭔가를 해달라는 얘기를 할 것이다. 그럴 때, 미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니 미국의 세기인 것이다.”

 

2004년 탄핵 정국에서 대표를 맡았을 때,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박근혜의 시대였다. 모두가 박근혜를 찾았다. 대척점에 서 있던 당내 인사들도 선거 때는 어쩔 수 없이 박근혜를 찾았다. 지금은 사람들이 김무성도 찾고, 유승민도 찾는다. 여전히 박근혜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의 박근혜’를 유지했다면 지금도 유일한 ‘슈퍼파워’로 존재했을 것이다. 

 

해가 뜨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가는 것이지, 어둠이 물러가서 해가 뜨는 것이 아니다. 봄이 오기 때문에 겨울이 물러가는 것이지, 겨울이 물러가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대통령은 오고 가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권력이 미래 권력을 흔쾌하게 맞은 적은 없다. 긴장과 갈등 속에서 씁쓸하고 쓸쓸하게 권력은 넘어가는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청와대의 ‘플랜A’는 실패했다. 그럼 현실적인 ‘플랜B’는 뭐가 될까? 유승민의 명예로운 퇴진! 거부한다면? 명예롭게(?) 퇴진한다! 개혁성을 버리고 총선 승리 가능할까? 김무성 대표 체제 붕괴와 전당대회! 청와대와 친박의 승산은? 설사 이긴다고 해도 당이 두 쪽이 날 것이다. 대통령의 탈당! 총선 승리 가능할까? 대통령의 탈당과 신당 창당! 확실한 총선 패배. 이제 와서 없었던 일처럼 덮는다! 가능할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깨끗하게 갈라서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면 합의 이혼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차피 철학과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 확인됐고, 서로를 배신자로 부를 정도로 신뢰가 깨졌다면 더 이상 당을 같이할 수는 없다. 이런 상태에서 박근혜와 유승민이 함께 당을 할 수가 있는가. 분열은 분명히 대통령의 위기, 새누리당의 위기, 보수의 위기가 맞지만 ‘합의된 분당’은 대통령과 보수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선거법 바꿔 2016년 체제를

 

지금이야말로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 처분하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1987년 체제’를 뛰어넘는 ‘2016년 체제’를 만들 절호의 기회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는 ‘갈등 관리’다. 지금의 양당제는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았다. 이제 다당제로 전환할 때다. ‘구보수’와 ‘신보수’, ‘구진보’와 ‘신진보’가 가치와 철학에 바탕을 둔 정책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좋다. 이념, 계층, 지역,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 세력이 모두 국회로 들어와 ‘자기의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국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1990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지역연합체를 깨고 이념과 계층, 혹은 세대와 지역에 기반을 둔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체제로 전환할 때다. 선거 제도를 중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는 것이 좋다.)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야 진보 정당도 경쟁할 수 있고, 청년 당도 나올 수 있다. 비례대표를 없애고 모든 정치인이 지역에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결과를 위한 연대’가 아닌 ‘결과에 의한 연대’를 위해 ‘대선결선투표제’도 도입하는 것이 좋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금과 같이 퇴행적인 싸움을 하는 것은 오로지 공천 때문이다. 소선거구제는 정치를 전쟁으로 만든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 그렇게 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당도 과반수를 얻기는 힘들겠지만 다른 당을 끌어들여 오히려 국정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고 많은 성과를 남길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회선진화법’은 없애도 된다. 헌법을 바꿔 1987년 체제를 만들었듯 이제는 선거법을 바꿔 2016년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여야 모두 그만 싸우고 지금이 웃으며 헤어질 때다. 혁신은 창조적 파괴다.  

 

박성민/정치컨설턴트/한겨레/201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