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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케티 열풍과 ‘이론’의 빈곤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4-10-10     조회 : 2,000  

피케티 열풍이 뜨겁다. 누진세, 부의 세습 금지, 사교육비 경감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그의 목소리가 큰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이클 샌델 신드롬이 재연된 것 같다. 재계가 총동원되어 피케티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세미나까지 여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피케티는 고국인 프랑스에서 이 정도의 열광을 받지는 못했고, 샌델 역시 미국에서는 수많은 철학자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사실 대안으로만 보면 피케티의 주장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 한국의 사례는 거의 포함하지 않았고, 한국의 사정은 한국 경제학자들이 더 잘 안다. 김낙년 교수 등은 이미 한국도 상위 10%가 부의 45%를 차지하는 심각한 불평등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경제전문가들도 한국의 심각한 부의 집중, 분배구조 악화에 대해 비판을 한 바 있다.

             

피케티와 같은 주장, 공론장에 나오기 어려워

그런데 우리 사회가 국내 연구자들의 비판이나 대안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있다가 외국 학자가 같은 주장을 하니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한국 경제학자들이 그 정도의 국제비교나 이론적 천착을 통해서 그의 수준에 필적하는 체계화된 분석과 대안을 내놓지 못한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극좌파나 사회민주주의적인 주장까지도 ‘외제’라면 귀를 솔깃해 하는 우리 사회의 지적 사대주의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이 이들보다 애초부터 능력이 모자라고 공부가 부족했을까? 현재 인구 대비 미국 유학 경제학자 수는 아마 한국이 세계 최고일 것이다. 세계 어떤 나라도 한국만큼 수도권의 주요 대학이 미국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나 사회과학자로 일색화된 나라는 없다. 그런데 한국 경제학자들은 한국경제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었고 제도권 학계에서 비판적 경제학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즉 한국에서는 성장주의나 신자유주의와 거리를 두면서 분배와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고 대안을 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학계에 아예 진입하기 어렵고, 정부나 기업의 연구비 지원은 물론 받을 수 없으며, 그들이 피케티처럼 지난 세기 경제사 자료를 축적하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민간 연구소나 재단 하나 없다. 피케티와 유사한 입장을 갖는 젊은 사회과학자들은 오늘도 이 대학 저 대학 전전하면서 강의로 생계를 유지하기에 바쁜 대학의 주변인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피케티와 같은 주장이 공론장에 나오기 어렵다. 한국에서 재벌 지배구조를 비판하는 사람은 학계 아니 국가의 ‘적’으로 지목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한국사회의 문제점과 대안을 오직 외국 학자의 목소리에서 찾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문인 계곡 장유(張維)는 “중국의 학술은 다양하다. 정학(正學, 유가(儒家)의 학문)이 있는가 하면 선학(禪學, 불가(佛家)의 학문)과 단학(丹學, 도가(道家)의 학문)이 있고, 정주(程朱,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를 배우는가 하면 육씨(陸氏,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를 배우기도 하는 등 학문의 길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식 무식을 막론하고 책을 끼고 다니며 글을 읽는 자들을 보면 모두가 정주(程朱)만을 칭송할 뿐 다른 학문에 종사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였다. ···중국에는 학자가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에는 학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주자학 교조주의·획일주의와 뭐가 다른가?

지금은 과연 다른가? 국가에는 오직 하나의 입장만 있어야 한다고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만들겠다는 나라에서 무슨 이론, 정책 논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재단 이사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사학에서 교수는 그냥 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종업원과 같은 존재다. 주류에 비판적인 소신을 가진 사람을 반역자 취급당하는 나라에서 다양한 이론과 정책대안이 꽃 피울 수 있을까? 이미 IMF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빨리 대안을 찾아야 할 의제, 즉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건전재정,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한 사회정책 등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아예 공론의 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여당은 70년대식의 성장론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고 있고, 야당은 대안담론을 키울 생각도, 그것을 담을 그릇의 역할도 포기하고 있다.   



과연 신자유주의가 신흥종교가 된 지금의 한국이 조선을 패망으로 이끈 주자학 교조주의 획일주의와 뭐가 다른가? 이론과 정책의 백가쟁명을 질식시키는 냉전 식의 흑백논리, 반대파를 압살하는 이론 사상의 일색화, 자본의 사회적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사회는 지적·문화적 후진국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지적 후진성은 곧 정치와 정책의 후진성으로 곧바로 연결된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안보’와 ‘성장’ 외에 모든 비판 담론을 질식시키는 ‘이론’ 압살의 지배질서가 만들어 낸 것이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다산포럼/201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