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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중심의 정치를 집어치워라
  
 작성자 : 허경옥
작성일 : 2014-08-17     조회 : 1,981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약진할 당시, 나는 그게 진보의 정점이고 ‘이제부터 위기’라고 생각했다. 두 정당의 이론과 정책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자연히 논리적 설득력보다 정서적 호소력에 기대는 게 습관이 되었고, 이 습관이 결국 야권의 총체적 난국을 낳았다.

 

 

가장 심각한 공백은 산업정책에 있다. 미국의 석유업계가 공화당을, 정보통신(IT)업계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두 정당의 변별적인 산업정책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산업과 정치를 짝짓는 데 서투르다. 그래서 정보통신도, 전기자동차도, 탈원전도 제것으로 삼지 못한다. 지난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선을 거치면서 정책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는데 유독 경제와 교육 쪽은 미흡한 느낌”이라고 토로하는 걸 들었다. 그도 뭔가 중요한 공백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산업과 기술은 진보의 가치를 체현하고 정치적 상징자본을 확보할 주요한 수단이다. 친환경 농산물의 신뢰도를 대폭 높여 동아시아 고급식품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할 때 비로소 농촌 살리기와 유기농이 진보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자동차 안전기준을 획기적으로 높여 급발진과 에어백 미작동 문제를 해결하고 기술혁신을 유도하겠다는 정책을 통해 비로소 ‘안전’이 진보의 정치적 지지 근거가 된다. 탈원전이라는 목표를 전기산업의 구조개혁 및 에너지기술의 혁신과 결합시킨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때 비로소 생태주의가 ‘먹고사는 세계’로 내려와 진보의 새로운 동력이 된다. 진보의 도덕이 늘 구호의 수준에 머물고, 진보의 정치가 늘 뭔가를 반대하는 일에 그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 진보에게 식량과 자동차와 전기를 정치화시킬 비전과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무능과 무감각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대응도 그르쳤다.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승객과 어민이 해경조직과 방재정책을 평가하는 식의 메타구조를 만들어 공적 영역의 개혁을 영속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관피아와 전쟁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정책 없이 정권심판론을 주장하니, 시간이 흘러 분노의 수위가 낮아지자 “너희가 정권 잡는다고 한들 별수 있어?”라는 냉소에 직면하는 것이다.

 

 

당대표가 물러나고 친노가 복귀하고 세대가 교체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대표가 486 정치인들보다 사상적으로 더 젊고 신선해 보이는 지금, 사람을 바꿈으로써 개혁하자는 얘기는 환상이다. 물론 정치에서는 사람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는 게 비전과 전문성과 정책의 여집합이라면, 사람 중심의 정치는 개혁의 적이자 정치 냉소주의의 근원이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의 패착도 여기에 있다. 그는 무려 ‘책’으로 정치에 데뷔하는 파격적 행보를 통해 콘텐츠 중심의 정치운동을 이끌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새정치는 의제와 정책 중심으로 가지 않고 창당과 합당, 계파와 공천이라는 기존의 사람 장사를 답습했다. 히딩크인가 싶었는데 홍명보였던 셈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매서운 훈장 역할을 해야 한다. 의원들을 무한청문에 뺑뺑 돌려서 사상과 지식의 밑천을 드러내고, 6개월 동안 도서관과 현장을 오가며 보고서를 써서 발표하도록 하고 이를 공개평가에 부쳐 차기 공천에 반영해야 한다. 당내 연구소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구성하여 당의 중심으로 삼고, 외부 싱크탱크에 아낌없이 투자해야 한다. 이래야 집권할 때 이뤄질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대할 수 있고, 계파 정립과 야권 통합도 명분과 질서를 가지고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바뀌어도 신뢰할 수 있는’ 정당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범/교육평론가/한겨레/201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