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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다시 얻다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4-05-31     조회 : 2,422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프레데리크 그로 지음/이재형 옮김, 책세상

록밴드 ‘들국화’가 지난해 발표한 ‘걷고 걷고’란 노래가 있다. ‘걷고 걷고 또 걷는다. 새벽 그대 떠난 길 지나 아침은 다시 밝아오겠지. 푸르른 새벽 길 꽃이 피고 또 지고. 산 위로 돌멩이길 지나 아픔은 다시 잊혀지겠지.’ 전인권의 쓸쓸한 목소리가 뚜벅뚜벅 귓전으로 걸어오는 이 노래는 녹록치는 않지만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우리네 인생에 대한 은유다. ‘달리기’가 목표를 향한 뜀박질이고, ‘날기’가 초월을 위한 날갯짓이라면, 삶 그 자체는 자연히 흘러가는 ‘걷기’에 더 가깝다. 인간을 탐구하는 것이 직업인 수많은 학자들이 걷기를 예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여기 한명의 철학자를 더 보태자. 프레데리크 그로. 미셸 푸코를 연구하는 프랑스의 철학자다. 그는 ‘걷는 것은 스포츠가 아니다’로 시작해 ‘나는 파리에서 이따금 이렇게 걸어본 적이 있다’로 이 책을 끝낸다. 걷기에 대한 사유답게 엄격한 체계 속에서 논리를 전개하기보다 산책하듯 유유히 흘러가는 서술방식을 택했다. 걷다 보니 옆에서 ‘발로 읽고 발로 쓰는’ 니체가 서성이고, ‘도피의 열정을 걷기로 해소한’ 랭보가 지나가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걷는 것이 곧 저항’이었던 간디가 행진하는 식이다.

루소·칸트·벤야민 같은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서 무심코 걷다 보면 어느새 걷기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논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선명해진다. 그는 이 학자들의 산책 속에서 자유·느림·고독·침묵·순례·영원·에너지 등의 키워드를 뽑아낸다. 예를들면 이런 문장이다.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걸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걸어가는 몸은 역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태곳적에 시작된 생명의 흐름일 뿐이기 때문이다(17쪽-자유).’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즉시 둘이 된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걸으면서 내 몸을 격려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고 칭찬한다. 내 몸과 나 자신은 부부 같기도 하고 노래의 후렴 같기도 하다. 분명히 영혼은 육체의 증인이다.(89쪽-고독)’
저자는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말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잊어버린 뒤 온전히 내 발걸음과 숨소리에 집중해 걸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 그렇게 걸어본지 오래다. 휴대전화에 정신이 뺏겨 유령처럼 부유하거나, 런닝머신 위에서 헐떡이며 제자리 걸음만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여기서 신문을 덮고 루소처럼 오랫동안 걸어보자. ‘옛날의 인간을, 원초적인 인간을 자신 속에서 발견하기 위해.(112쪽)’

김효은/기자/중앙일보/201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