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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민족의 생존은 모국어의 생존에 달려 있다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9-08-07     조회 : 132  

[이 시대의 뛰어난 언어학자인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그리스학)가 지난 627일 그리스 테살로니키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현지에서의 그의 기념강연 요지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의사소통과 지식의 축적, 역사와 문화의 창조는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두 종류의 전쟁을 한다. 하나는 무력 전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화-언어 전쟁이다. 어떤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할 때에 마지막 궁극적인 정복은 언어 정복이다. 상대방 언어를 완전히 말살해 그 민족의 정신을, 아니 그 민족의 존재 자체를 영원히 사라지게 만드는 정복, 이것이야말로 두 민족 사이의 전쟁을 영원히 끝내는 방법이다. 무력 전쟁에서 진 민족이 훗날 자신들을 패배시킨 민족에 승리하여 복수하는 일은 역사상에 흔한 일이다. 그러나 한 민족이 문화-언어 전쟁에서 패해 자신들의 언어를 잃으면 그 결과는 참담하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상에는 6,0007,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언어학자, 인류학자들이 21세기가 끝날 즘이면 이 가운데 30% 이상이, 어떤 이는 90%의 언어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느 쪽이 옳든 수많은 언어가 사라질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인류의 커다란 손실이다. 그 언어로 축적된 모든 실용적, 정신적 정보와 지식, 사상이, 다시 말해 그 언어로 구축되었던 세계 전체가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언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문자다. 문자가 없는 언어는 문자를 가진 언어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문자 없이 싸운다는 것은 맨주먹으로 총을 든 사람들과 싸우는 것보다 더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뉴기니아와 아마존 강 지역,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 아프리카 오지 등지에서 수많은 언어가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언어 전쟁에서 문자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문자의 표준화와 표준어 제정이다. 어떤 문자든 표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행정과 교육, 상거래 등의 공용어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공용어는 무엇보다도 우선 표준 맞춤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어처럼 오랜 문헌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자 생활에 역사적 맞춤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나 영어, 불어와 같은 역사적 맞춤법의 언어들은 실제 발음과 철자가 상당히 차이가 나도 원형을 밝혀 적는다. 그러나 아직 표준 맞춤법이 없는 언어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만약 각자가 쓰고 싶은 대로 철자를 적는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어 문자로 협동은 물론 소통조차 매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지거나 외국 문자를 채택한 언어가 제일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표준 맞춤법이다. 표준 맞춤법 제정은 조금도 쉽지 않은 일이다. 언어학자들 사이에 서로 대립하는 여러 학설과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맞춤법에 대해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많은 연구와 시험이 필요할 뿐 아니라 많은 시간과 돈, 정력이 요구된다. 거기에 각 이해 집단들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권이 얽혀 있어 맞춤법 제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더구나 그 언어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면 이 문제는 더욱더 어려워진다.

 

표준 맞춤법이 없으면 어떤 언어도 고급 문학이나 학문이 불가능하다. 세계 최초의 문명을 만들어 낸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문명을 이루어 냈음에도 결국에는 사용이 중지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그렇게 된 배경에는 이 문자들이 쓰기도 읽기도 배우기도 어려운 데다 표준 맞춤법마저 없어 효율적인 언어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 표준화, 다시 말해 언어 표준화의 두 번째 필수 요건은 표준어 제정이다. 한 언어 안에는 수많은 방언이 있게 마련이고, 그 방언 가운데 어느 것을 표준어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처럼 고대 아테네의 학문과 문학이 다른 지방의 언어보다 훨씬 빼어나면 이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도 있다. 바로 그 지역의 방언이 다른 방언들을 누르고 나라의 표준어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또 단테나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세르반테스, 괴테, 푸시킨과 같은 빼어난 대문호를 가지고 있는 언어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대문호들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표준어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표준 맞춤법과 표준어를 최초로 제정한 민족은 고대 그리스인들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 학자들은 이미 기원전 3세기에 70여만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정리, 분류하고, 앞선 세대의 거대하고 풍부한 학문적 지식을 배우고 전하기 위해 맞춤법, 구두점, 띄어쓰기, 대소문자 구분 등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 결과 그리스어는 세계의 최초 학문어로 발돋움했다.

 

문자의 표준화를 한 또 다른 문명은 중국이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왕은 세 가지를 표준화했다. 우선 모든 무기를 표준화하여 전쟁의 효율을 최고로 끌어 올렸다. 또 도량형을 통일하여 시장에 질서를 세웠다. 그리고 분서갱유(Burning of Books and Buring of Scholars 기원전 212Qin Shi Huang of Qin dynasty of Imperial China)를 통해 문자를 통일했다. 그 이후 중국은 2천 년 동안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다.

 

이외에도 언어 표준화를 위해서는 외국어 표기법, 표준 문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어 표준화의 마지막 단계이자 완성은 여러 가지 용도의 국어사전 편찬이다. 사전 편찬은 위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사전 편찬은 오랜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협동, 비용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한 나라말이 얼마나 여러 종류의 사전을 가지고 있느냐, 그 사전들의 수준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이 그 언어의 품격과 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언어 표준화가 이루이지지 않았을 때, 그 언어는 사라질 위기에 빠진다. 아일랜드의 게일어는 바로 그 비극에 빠진 언어다.

 

언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최후의 요소는 고급 문학과 학문어로서의 우수성이다. 그 가운데서도 학문이 더 결정적이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를 세운 민족은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만주어였고, 청나라를 세운 뒤로 만주 문자를 만들어 공용어로 사용했다. 오늘날에도 북경의 자금성에 가면 모든 현판에 한자와 함께 만주어가 적혀 있다. 만주어는 공용어가 갖추어야 할 모든 필수 조건을 다 갖춘 언어였을 뿐 아니라 300년 이상 세계 최강의 중국 제국의 공용어로 쓰인 언어다. 그럼에도 만주어는 사어가 되었다.

 

2000년 이상 고급 문학과 학문, 특히 철학을 해온 중국의 한자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자로 얻을 수 있는 문학의 즐거움과 고급 정보나 지식의 습득은 만주어와 비교했을 때 아예 비교할 필요조차 없다. 결국 최고의 권력을 누리던 만주족 스스로가 자식들에게는 한자 교육만 시키고 만주어 교육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아 결국 만주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칼과 활로 문장한 군대가 미사일을 가진 군대를 이길 수는 없다. 언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도로 정확하고 섬세한 개념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를 갖지 못한 언어가 아주 고도의 학문과 추상적인 철학을 표현할 수 있는 가진 언어를 이길 수는 없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에서 자기 나라 말로 철학을 최초로 한 나라는 영국이다. 이미 17세기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레비아탄(Leviathan)>을 영어로 출판했고, 그 뒤를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와 흄(David Hume 1711-1776)이 뒤따랐다. 자연과학 부분에서는 뉴턴(Sir Isaac Newton, 1643-1727)이 영어로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와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등이 불어로 학문을 시작했다. 한 세기 뒤에 독일도 자국어로 학문을 시작했다. 1781년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순수이성 비판>을 독일어로 출판했고, 그 뒤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따랐다.

 

일본이 열정적으로 서양의 선진 지식과 기술을 들여온 17세기부터 아시아에서의 중국의 패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서양의 문학과 학술 서적을 번역하여 17세기에는 한국이나 중국을 앞선 학문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학문이 앞선 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는,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예가 영어다. 한때 학문 강국이었던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의 학자들은 벌써부터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을 선호하고, 한국에서도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을 중심으로 영어로 논문을 쓰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과 영국은 자신들 언어의 패권과 그에 따른 이점을 분명히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언어 전쟁에서 확실한 승리를 하여 전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영국 수상 처칠은 이미 세계 제 2차 전쟁 중에 다음과 같이 영어 확산의 야심을 들어냈다.

 

The power to control language offers far better prizes than taking away people’s provinces or lands or grinding them down in exploitation. The empires of the future are the empire of the mind. (Winston Churchill, Prime Minister of the United Kingdom, 1941: House of Commons, cited in Morton 943, and 1943: when receiving an honorary degree at Harvard University)

언어를 지배하는 것이 민중들에게서 지역이나 경작지를 빼앗거나 그들을 착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가져온다. 미래의 제국은 정신의 제국이 될 것이다.

 

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7년에 미국 대통령 투르만도 다음과 같이 미국의 문화적 세계 정복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The whole world should adopt the ‘American system’. The American system can survive in America only if it becomes a world system. (Harry Truman,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1947)

전세계가 미국의 체제를 채택해야만 한다. 미국의 체제는 전 세계의 체제가 될 때만 존속될 수 있다.

 

이런 영어의 제국주의 패권의 야망에 대해 다른 언어는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언어도 영어의 해일을 피할 방법이 없다. 이제는 영어를 모르고 학문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세계의 엘리트들에게 영어는 필수적인 언어다. 그러나 영어의 절대적인 우위가 학자가 자신의 모국어로 학문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한 언어의 학문적 수준은 바로 그 언어를 쓰는 나라의 힘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모국의 수준이 그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다. 따라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언어학자의 의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하겠다.

 

이상 학문과 나라의 흥망에 대해 예를 들 필요는 없다. 학문을 자기 모국어로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그 언어 사용자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러기에 한 나라의 학문 첨단을 맡고 있는 학자들의 자신의 모국어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 민족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언어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국은 이웃 국가에게서부터 많은 위협과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압박 속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을 굳건히 지켰다.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라는 훌륭한 왕이자 언어학자 덕분에 1446년에서야 우리 문자 한글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로써 한국어는 사멸의 위험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의 지도층은 이 우수한 문자를 무시하고 행정이나 교육, 학문에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한국어가 공용어가 된 것은 1945912일부터다. 그 전까지 한국어는 별 볼일 없는 지방어로 취급되었었다.

 

1910년 이후 우리 민족의 독립 전쟁은 무장 투쟁과 언어 전쟁, 두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일제 치하 아래에서 한국의 언어학자들은 1936년에는 표준 맞춤법을, 1939년에는 표준어 사정 결과와 외래어 표기법을 제정하여 공표했다. 한국어가 공용어 구실을 할 모든 준비를 다한 것이다.

 

그리고 1937년부터 민족의 염원인 한국어사전 편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안 일본 당국은 1942년 한국 언어학자와 그들을 돕던 애국 인사 42명을 체포하여 재판에 넘겼다. 한국인들의 모국어 운동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았던 일본은 이미 1938년부터 공공 생활에서 한국어 사용을 절대 금했다. 그들은 관공서와 학교는 물론 신문, 잡지, 방송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철저하게 금했다.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한국어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벌금을 물렸으며 마지막에는 창씨개명이라는 횡포까지 저질렀다. 그러던 중에 한글학회가 국어사전 편찬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이런 박해 과정에서 두 명의 애국자가 감옥에서 순국했다.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인 1945815일에 일본이 항복해서 갇혔던 분들은 풀려 나올 수 있었다.

 

19459월에 미군이 남한을 통치하러 들어왔을 때, 미군정은 그때까지 남한을 통치하던 일본인들의 조선총독부의 조직과 인원을 그대로 이용하여 통치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들어왔다. 맥아더 장군이 일본 본토를 통치한 수법과 동일하다. 통치 언어는 물론 일본어로 한다는 잠정적인 결정이 있었다. 그러나 미군이 서울에 들어온 지 불과 닷새 뒤인 1945912, 미군은 미군정 명령 제4를 통해 한국어를 공용어로 한다고 공포했다. 얼핏 보기에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 결정이 실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어로 행정을 할 수 없었던 조선총독부 일본인 관료들은 그 다음날로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어전쟁에서 일본을 이긴 것이다.

 

한글학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언어 전쟁을 계속했다. 한창 전쟁 중이던 시절에 이들은 미국에 질 좋은 종이와 잉크를 원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민족의 염원이 한국어사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1957년 여섯 권짜리 한국어사전이 완성되어 출판되었다.

 

1945년 가을부터 남북한에서는 모든 학교에서 한국어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국어로 교육을 받은 첫 세대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이 세대를 한글세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한글세대는 모국어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보여 주었다.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인도의 간디는 민중들에게 반영 운동을 하라는 연설을 영어로 한 반면, 한국에서는 친일파들이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충성을 다 하라는 독려를 한국어로 했다. 이 차이가 오늘날 한국과 인도의 언문생활을 결정지었다. 친일까지도 한국어로 한 우리는 지금 모든 교육을 우리말로 하고 학문 서적도 한국어로 출판하는 반면 영어로 영국에 저항했던 인도는 찬란한 역사와 한때 세계 최고의 학문을 일구어 냈음에도 교육과 학문을 영어로 하고 있다.

 

이제 제가 평생 학자로서 해온 일에 대한 제 스스로의 평가를 해 보려 한다. 1983년에 그리스 아테네대학에서 언어학으로 박사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만 해도 저는 앞으로 그리스 언어학에 무언가 큰 공헌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고, 저 역시 그러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 보니 다른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한 언어를 잘 다듬기 위해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수준 높은, 다양한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아직도 <역순사전>이 없었다. 다른 동료 언어학자에게 역순사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꼭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해 봤지만 그들은 큰 관심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제가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사전인 한국어 발음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한국방송공사와 협동하여 1993<표준한국어발음대사전>을 발간했다. 표준 발음이 결정되어 있지 않으면 디지털 시대에 음성 합성이나 음성 분석에 혼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제가 한국으로 돌아온 1980년대 초는 우리들 생활에 컴퓨터라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던 시기다. 저는 컴퓨터가 한국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한국어는 앞으로 올 정보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동료 한국 언어학자들은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제가 나서게 되었다. 그 결과 저는 1993년에 한국어 맞춤법 검색기를 만들었고, 1995년에는 <한국어전자 사전>을 만들어 마이크로소프트 운영 체제에 납품했다. 지금 컴퓨터에 쓰이는 한국어사전 가운데 하나가 제가 만든 사전이다. 1990년대 초에 유니코드 안에 각 문자의 코드 영역을 결정할 때, 저는 한글 영역이 왜 11,172자여야 하는가를 언어학적으로 증명하여 그 영역을 할당 받는 일에도 관여했다. 또 같은 시기에 <한국지명사전>의 전산화도 주도했다.

 

여러 종류의 한국어사전을 만들면서 저는 한국어의 어휘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를 보다 수준 높은 고급 언어로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혼자서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한 세계적 언어들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학문어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언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정도이다. 고급 문학과 학문을 이루어낸 언어들을 살펴보면서 제가 발견한 것은 이 언어들에서 고급스럽고 섬세한 의미를 나타내는 낱말들은, 원형을 그대로 차용했건, 번역을 통해 받아들였건, 대부분 그리스 어원을 가졌다는 사실이었다. 이들 언어에서 그리스 어원의 낱말들을 뺀다면 고급 언어로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어는 세계 최초의 학문어이자 동시에 세계 유일의 학문어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어는 자기 모국어를 세련되게, 고급스럽게 발전시키기 위해 심오하고 풍부한 어휘를 가져다 쓸 언어의 보물 창고다. 그런데 이 보물 창고를 들어오는 데에는 입장료도 없고 자격증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든 들어와서 자기가 필요한 낱말을 마음껏 골라 가져 갈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그리스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자신의 언어 발전을 위해 필요한 낱말들을 고를 수 있는 높은 안목과 그 낱말들을 자신의 모국어 현실에 맞게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그리스어를 높은 수준까지 배워야 한다.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명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그런 안목과 정확한 번역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그리스로 유학 간 이유도 바로 이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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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한국어에 아직 미처 이루어지지 않은 표준화 작업과 전산화 작업을 어느 정도 이루어낸 다음 저는 어떻게 그리스어에서부터 우리말로 고급 개념어들을 가져오고, 또 그 어휘들에 깔려 있는 문화적 맥락을 한국인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은 이런 노력이 저 한 명으로서는 불가능하고, 저의 세대만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리스학의 후학들을 기르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후학을 정식으로 기르기 위해서는 대학에 전공 학과를 세워야 한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다음부터 그리스학과를 설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다. 그것은 학문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였다. 학과 설립에 저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누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그리하여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학과를 세울 수 있었다.

 

한국어에 그리스어의 고급 개념 낱말들을 들여올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우선 그리스의 명작 작품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어떤 명작이든 번역되는 순간부터는 번역된 언어의 지적 자산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 뒤진 선진 문화의 문물을 들여올 때 가장 기본적이고도 시급한 작업이 번역인 까닭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고대 서양철학과 고대 그리스 문학, 고대 서양사를 전공하는 전공자들이 꽤 많아 1980년대 이후, 주로 2000년대에 들어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 전집, 비극, 헤로도토스 등의 많은 작품들이 고대 그리스어 원본에서부터 번역되었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어의 번역을 할 수 있는 요원은 아직도 지극히 적어 제가 또 나섰다. 그래서 작년에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했고, 지금은 <영혼의 자서전>의 번역을 거의 끝냈다.

 

번역과 함께 해야 할, 어쩌면 더 중요한 작업이 그리스어-한국어사전 편찬이다. 사전을 만든다는 일은 정말로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시간을 물 쓰듯 해야 하고, 온 신경을 다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대역어 사전 하나만 있으면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큰 덕을 보는 일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작년부터 제가 만든 <현대그리스어-한국어 온라인사전>이 한국에서 구글을 누르고 검색 포탈 1위를 달리는 naver.com에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추가 작업을 필요로 하는 부족한 사전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정찬호 (19-08-11 21:31) 답변 삭제
유교수님의 강의 잘 읽었습니다. 완도에서 서울로 오는 버스안에서 열강하신 내용 너무 좋았습니다. 더욱 건강하셔서 좋은 강의 많이 남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