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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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당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4-04-13     조회 : 2,659  

지구상 인구가 70억명이라면 70억개의 당파성이 있지만, 대개 사람들은 객관성으로 간주되는 강자의 당파성과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개인 특히 사회적 약자가 당파성을 드러내는 일은 뒷감당의 용기가 필요하다. 민망함, 책임감, 공부…. 실천으로 자기 생각을 증거해야 하기에 삶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건 내가 이민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인데, 우리 문화는 입장이 분명한 사람을 싫어한다. 

 

자기 입장이 분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여성, 동성애자, 장애인(운동가)- “나는 당신들과 다른 부분이 있고 이 차이는 당신들이 만든 정치적 문제다”라고 주장한다. 당파적일 것 같지만 의외로 일부 좌파 집단은 예외다. 한국의 좌파는 정치경제적 이해 경합 세력이라기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지식인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들(남성)은 좌파든 우파든,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지만 가시화되지 않은 권력인 남성연대의 ‘영원한’ 보호를 받는다. 통치 세력이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은 좌파라기보다 민중들이다.(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강정 마을 투쟁…) 

 

 

책은 환경 연구 입문서에 가깝다. 불편한 진실, 즉 좋은 정보로 빼곡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빈부 격차 2위국이다.(1위는 멕시코, 113쪽) 덴마크의 2011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81.83%였는데 2012년 한국은 54.3%였다.(42쪽)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국가다!(73쪽) 아직도 “성장=고용” 논리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수출이 10억원 늘어서 창출되는 고용은 2005년 10.8명에서 2011년에는 7.3명으로 줄었다.(108쪽) 

 

나도 환경 관련 현실은 알고 싶지가 않다. 진실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불면을 가져온다. 하지만 진실 때문에 잠 못 드는 이들이 세력화되어야 이런 세상이나마 지속가능할 것이다. 

 

나는 “무관심한 당신께. 우리나라 제1당원께”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정치에서 50%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는 최대 ‘정당’인 부동층에게 투표를 권하는 내용이다.(231쪽) 

 

다 아는 이야기지만 새삼 흥미로웠다. 현재 원내 제1당은 새누리당이다. 반면 원외 제1당은 ‘무관심당’이다. 민주주의가 대의제에 기반해 있고 다수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런 이야기는 이제 ‘공자님 말씀’처럼 들린다. 지금은 엔지오들(NGOs)도 시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무관심은 강력한 당파다. “선호 정당이 없다”는 논리적으로도 성립할 수 없다. 우주의 진공 상태라도 그런 상황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지 정당이 있다/없다가 아니라 무관심의 효과다. 

 

며칠 전 투표하지 않겠다는 친구와 언쟁을 벌였는데 내가 이겼다(?). 그녀의 논리는 “보이콧도 존중해 달라. 그것도 선택이고 실천이다.” 나는 이렇게 반박했다. “동의한다. 그렇다면 가만있지 말고 보이콧 운동을 조직하라. 선거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현실 정치를 하라.”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배우 유아인의 지적대로, 개인이 기본적 권리마저 두려워하게 만든 권력의 승리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은 일종의 집단 우울증 현상이다. 암의 증상이 암 자체가 아닌 것처럼,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우울이라기보다는 기운 없음과 인간 혐오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약물과 사랑이라는 ‘영적인 치료(상담요법)’를 병행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 회복이 몸을 낫게 하는 것이다.
 

나도 좌절을 거듭하다 보니 희망이라는 말에 냉소를 넘어 분노하는 인간이 되었다. 시대의 반영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이 책을 읽고 부끄러웠다. 저자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오랜만에 스스로 신나 하면서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념이 보편의 탈을 쓰고 이데올로기가 될 때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꿈과 고뇌는 우리를 연결시킨다.  

 

 

정희진/여성학 강사/한겨레 2014.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