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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주의자들과 대결하는 니체 자서전
  
 작성자 : 도서출판까…
작성일 : 2014-12-08     조회 : 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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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솔직한 내용을 담은 문제작!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까만양, 2013)는 여동생과의 근친성애, 코지마 바그너와 루 살로메의 관계, 니체가 매독에 걸린 사연 및 그의 성욕과 성적 환상들과 체험들에 대한 고백, 그리고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준 쇼펜하워, 바그너, 루터, 셰익스피어, 마르크스 등에 대한 평가들을 잠언형식으로 진술하여, 니체 연구자들은 물론 니체 애호자들의 주목시킨 문제작으로서, 니체의 극렬하고 심대한 내면세계를 가차 없이 보여주는 진귀한 보물이자 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책을 영역한 오스카 레비(Oscar Levy)는 이 책의 의미에 대해 “지상에서 가장 영예로우면서도 가장 절망적인 인생들 중 하나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고서이다.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지만, 하여간, 독자들은 이 책의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서 생각에 잠길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야기가 유쾌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경우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겪은 상처들과 주름들을 폭로하는 장면이 우리의 위장을 부풀리는 구경거리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평가했다.
니체의 저작들 중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지금까지 에스파냐어판(1956, 1980, 1996년), 일본어판(1956년), 포르투갈어판[1990년; 브라질(1992년)], 히브리어판(2006년), 중국어판(2009)으로도 번역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독일어판(1993)으로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자서전은 그렇듯 비극적 운명을 겪은 만큼 의심할 수 없는 진가를 보유한 니체의 자서전으로서 위상을 서서히 회복해왔다.
우여곡절을 겪은 니체의 두 자서전 『이 사람을 보라』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1888년 가을부터 뭔가에 쫓기듯이 그러나 일진광풍처럼 집필에 몰두한 니체는 해가 바뀔 즈음 무려 다섯 권이나 되는 저작들, 『니체 대 바그너』, 『우상들의 황혼』, 『반그리스도』,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찬가』를 탈고했다. 그 저작들 중 니체가 만44세 생일인 1888년 10월 15일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같은 해 11월 13일 완성한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첫 번째 자서전이었다.
그러나 이 첫 자서전은 니체가 살아있는 동안 출판되지 못했다. 왜냐면 처음에는 니체가 집필한 원고들의 타이핑과 교정을 주관하던 친구와 출판업자가, 이어서 니체의 모친과 외삼촌이, 그리고 나중에는 여동생이 개입하여 출판을 보류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출판이 미뤄지던 『이 사람을 보라』의 원고는 집필된 지 무려 20년이 흐른 1908년에야 ― 더구나 니체의 광기가 여실히 드러나거나 모친과 여동생과 제부 푀르스터가 부정적으로 언급된 문장들과 단락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로 ― 비로소 처음 출판되는 비운을 겪었다.
188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혼절한 후 예나의 정신병원에 감금되다시피 입원(1889년 1월 17일~1890년 3월 24일)해있던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의 출판이 보류됐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했다. 그리하여 니체는 자신을 “실제로 곁에서” 감시하던 모친(그리고 모친과 주고받던 편지들로써 니체를 감시하던 여동생)의 시선을 피해 비밀리에 두 번째 자서전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집필했고, 이번에는 각별히 조심하여 그 원고를 비밀리에 병원에서 “반출”하여 출판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자서전도 첫 번째 자서전만큼이나 ―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 지난하고 착잡하며 기구한 우여곡절들을 겪었다. 특히 그 과정에서 니체가 독일어로 집필한 이른바 “육필”원고가 행방불명되는 안타까운 사태마저 겪었고, 1951년에야 비로소 미국의 시인 겸 출판편집자 새뮤얼 로스가 보어스 헤드 북스(Boar's Head Books)라는 출판사를 통해 “그나마도” 영어판으로만 겨우 출판함으로써 가까스로 빛을 볼 수 있었다.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소송을 당할 가능성 때문에 비밀리에 번역되다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가 처음 출판될 때까지 겪은 기구한 우여곡절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뉠 수 있다. 먼저 전반부는 니체가 예나의 정신병원에서 비밀리에 원고를 집필하여 “밀반출”한 1889년 1월 17일~1890년 3월 24일부터 오스카 레비가 그 원고를 새뮤얼 로스의 손을 거쳐 1923년에 입수하여 영어로 번역한 1927년 3월까지 약 38년간의 세월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오스카 레비가 영어본 원고의 서문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이 대목에서 기억해둘 사항은 레비가 독일어본 원고를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왜냐면 레비의 딸인 모드 로젠탈 로스(Maud Rosenthal Roth)는 자신과 어머니가 1908년부터 아버지의 원고를 타이핑하고 교정하는 작업을 담당했지만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원고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비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번역작업을 하던 당시 영국에서 시행되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들에 의거하면 독일에서 활동하던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영국의 법원에도 충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만약 레비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독일어본 원고를 입수했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사실이 엘리자베트에게 알려지면 그녀가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농후했고, 그럴 경우 레비의 딸과 아내도 소송에 휘말릴 수 있었다. 왜냐면 엘리자베트가 자신과 오라비의 근친연애 내지 근친성애를 언급하는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출판을 그대로 두고 보았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소각될 운명에 처했던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의 극적 출간!
레비가 완성한 영어본 원고를 독일어본 원고 함께 미국의 새뮤얼 로스에게 우송한 1927년 3월 이후부터 로스가 보어스 헤드 출판사에서 원고를 출판한 1951년까지 약 24년간의 세월에 해당하는 이 후반부의 사연은 특히 새뮤얼 로스라는 인물의 이력과 밀접하게 맞물린다.
1927년 봄 로스는 드디어 런던의 오스카 레비로부터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독일본 원고와 영어본 원고를 우송받았다. 그러나 로스는 그 원고를 출판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하지 못했다. 왜냐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가 아직 생존해있었고, 미국의 명예훼손에 관한 법률을 통해서도 엘리자베트가 충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원고의 출판을 저지한 또 다른 사연들도 있었다.
그 무렵 로스는 잡지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몇몇 작가들의 에로틱한 작품들을 작가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투 월스 먼슬리》에 연재했는데, 그 작품들 중에는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소설 『율리시스Ulysses』(1922)도 포함되어있다. 특히 로스가 《투 월스 먼슬리》에 연재한 『율리시스』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대목들을 위주로 축약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조이스는 로스가 추진하던 『율리시스』의 축약연재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강제명령을 받아냈다. 그래도 굴하지 않은 로스는 이듬해인 1928년에도 잉글랜드의 작가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 1885~1930)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애인 Lady Chatterley's Lover』(1928)을 ― 적어도 미국에서는 최초로 ― 작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해적판으로 출판했다.
그즈음 뉴욕악덕근절협회(New York Society for the Suppression of Vice, NYSSV)의 감시망에 포착된 로스는 1928년에 판매를 위한 외설물 소지 혐의로 고발되어 뉴욕의 경범죄자 노역장에서 3개월을 복역했다. 이듬해인 1929년에는 뉴욕악덕근절협회가 아예 로스의 사무실을 급습하여 로스가 출판한 도서들과 출판을 준비하던 원고들을 압수하고 로스를 외설물 배포혐의로 고발했다. 그 결과 1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로스는 뉴욕악덕근절협회가 압수해간 원고들과 도서들을 소각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낙심했다. 그때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의 원고들도 압수된 다른 원고들과 함께 소각되었다고 생각한 로스는 출판업을 접었고, 압수되지 않고 남아있던 도서들과 원고들을 자신의 창고에 보관해두었다. 그러나 생활고에 시달리던 로스는 다시 외설물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1933년부터 외설물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면서 1934년에 다시 고발되어 20일간 구류 처분을 받았고, 급기야 미국연방수사국에 검거되어 1936~1939년까지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석방된 로스는 창고에 보관했던 재고도서들을 이용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1940년부터 우편판매를 위주로 하는 도서판매업을 시작했고, 1940년대 후반부터는 출판업도 재개했다. 그즈음 창고에서 재고도서들을 확인하던 로스의 아내가 “부주의하게 취급되어 파삭파삭해지고 여러 군데 벌레들이 갉아 먹어서 훼손된 레비의 영어본 원고와 서문의 복사본”을 우연히 발견했다. 로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원고의 훼손된 부분들을 복원하고 관련내용들을 조사하고 대조한 끝에 1951년 처음으로 출판했다.
근친연애와 여성편력에 관한 내용, 위작이냐 정식저작이냐?
니체가 집필한 지 무려 62년 동안 독일, 캐나다, 영국, 미국을 떠돌며 대서양을 세 번이나 건너는 기나긴 여행 끝에 마침내 빛을 본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기구한 운명이었다. 이 책은 출판되자 환영과 찬사도 받았지만 더 많은 의혹과 비난에 휩싸였다. 더구나 이 책에 수록된 니체의 놀라운 고백들―니체와 여동생의 근친연애 내지 근친성애, 소문만 무성했던 니체와 코지마 바그너 또는 루 살로메의 내밀한 관계, 니체가 매독에 걸린 사연, 니체의 내밀한 성욕과 성적 환상들과 체험들―은 니체학자들과 니체숭배자들의 의혹과 비난을 더욱 부추겼다. 그렇듯 이 책을 의심하고 비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니체학자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한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이었다. 그는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아예 “위작”으로 규정해버렸다. 그 결과 이 책의 의미는 왜곡되고 진가는 축소되면서 지금까지 니체의 정식저작으로 “공인”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어왔다.
그런데 카우프만이 이 책을 “위작”으로 규정한 이유들은 그가 니체학자로서 얻은 명성을 감안하면 허술하다 못해 차라리 궁색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가 이 책을 “위작”으로 규정하면서 열거한 이유들은 대체로 니체가 독일어로 직접 쓴 ‘육필원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출판업자 새뮤얼 로스의 착잡한 이력이 의심스럽다는 것, 오스카 레비의 니체에 대한 식견과 번역능력 및 번역과정이 의심스럽다는 것, 니체가 고백하는 사연들이 실제로 발생한 일들과 시간적공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대목들이 발견된다는 것, 그리고 ― 아마도 그에게 가장 심한 곤혹감과 반감을 안겨주었을 ― 니체의 근친연애와 여성편력에 관한 내용들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년간 이 책을 연구한 미국의 독일어문헌학자 겸 언어학자 월터 스튜어트(Walter Stewart)는 “이 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니체만이 쓸 수 있는 니체의 자서전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는다. 스튜어트는 『니체의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비판적 연구』라는 연구서에서 카우프만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카우프만의 주장을 불성실한 편견과 오해의 소산들로 평가한다. 카우프만이 위작이라고 주장을 하는 까닭은 아마도 카우프만이 펴낸 니체의 전기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사실들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그런 사실들 중 어떤 것들은 카우프만을 위시하여 니체를 존경하거나 숭배하는 니체학자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만치 노골적이고 에로틱하게 ― 즉 선정적이고 외설적으로 ―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에 담긴 니체의 고백들을 그렇게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것들로 바라본다는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불성실하게 읽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은 니체가 사용한 “근친연애 또는 근친성애”라는 단어만 보고도 ― 니체의 고모 로잘리도 그랬듯이! ― 미리 겁을 집어먹거나 혐오감을 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스튜어트도 지적하듯이, 그리고 이 책의 내용들을 감안하더라도, 니체와 여동생의 “연애”는 흔히 “터부”시되고 “죄악”시되는 “근친상간”으로 치부될 만큼 “선정적이거나 외설적인”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둘이 나눈 오누이간의 애정은 둘이 처한 환경에서는, 오스카 레비도 인정하듯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역사적으로도 근친연애나 근친결혼은 고대 이집트나 고대 로마에서는 금기가 아니었고 기독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강력한 금기로 규정되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심각한 편견과 반감에 사로잡힌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이 이 책을 정확히 비판할 수 없었다는 것은 당연한 소치로 보인다. 물론 그들이 품은 그런 뿌리 깊은 편견과 반감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이 책을 위작으로 치부하는 이유들 역시 즉흥적이고 불성실한 태도의 소산들이기는 마찬가지다. 예컨대, 그들이 가장 빈번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반대이유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니체가 “독일어”로 직접 쓴 “육필원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월터 스튜어트는 그것이 니체의 자서전을 위작으로 규정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저자의 “육필원고”가 없다는 사실만 따진다면 위작으로 규정되어야 할 저서들은 실제로 수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저 호메로스의 서사시들부터 헤라클레이토스와 탈레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은 물론 기독교경전들과 불교경전들도 저자의 육필원고가 없으므로 모조리 위작이라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카우프만과 그의 지지자들은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를 미국에서 처음 출판한 새뮤얼 로스의 이력을 문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로스가 처한 환경과 상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세간의 평판과 소문만으로 그를 평가하는 편견과 오해의 소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된 “우여곡절의 후반부”가 증명한다.
로스는 그를 오해하는 자들이 아는 만큼 위조와 날조를 일삼는 사기꾼이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유의미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를 쓰고 나름대로 독학하면서 언론출판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도 진력한 불운한 출판인이었을 따름이다. 그가 이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범한 실수를 정직하게 시인하는 대목(제5장 14절)은 그가 적어도 사기꾼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특히 카우프만은 로스가 『율리시스』를 해적판으로 잡지에 연재하여 출판법 위반했듯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도 위조했을 수 있다고 ‘암시’했지만, 그 당시 통용되던 미국의 출판법에 따르면 로스의 『율리시스』 연재는 전혀 위반이 아니었고, 단지 그의 잡지에 연재된 내용들이 외설적인 것들이라는 이유로 뉴욕악덕근절협회가 그를 외설물 제작자 겸 판매자로 낙인찍었을 따름이었다. 카우프만은 오스카 레비의 번역능력까지 트집을 잡는데, 그것은 도리어 오스카 레비에 대해 카우프만이 실로 무지했다는 사실만 반증할 따름이다. 그렇듯 카우프만이 제기하는 의혹들은 모두 그의 편견과 불성실에서 빚어진 오해와 무지의 소산들이었다. 그의 의혹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들이었는지는 월터 스튜어트의 저서가 여실히 입증한다.
그러므로 오스카 레비뿐 아니라 월트 스튜어트도 결론짓듯이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니체”만이 쓸 수 있는 자서전이다. 설령 그것이 ‘만에 하나’라도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카우프만이 의심하는 자서전에 언급된 사건들의 ― 니체의 착각과 망상이 빚어낸 ― 시공간적 오차들이야말로 오히려 누가 보더라도 어설프게 보이는 위조자가 “위조의 미덕” ― 정확성과 치밀성 ― 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반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조되었을 가능성은 무색해진다.
니체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풍부한 내용들
이 자서전에 녹아있는 니체 정신의 비극성과 심대함은 니체의 다른 저작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에 비해 하등 뒤지지 않으며 어떤 대목들에서는 더욱 비극적이고 더욱 극렬한 성격마저 드러낸다. 또 그만큼 더 니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들도 풍부하다. 예컨대, 청소년 니체를 사로잡았던 “백작부인”의 환상은 그가 슐포르타의 엄격하고 금욕적인 규율을 그만큼 힘겹게 감내했고, 그것이 “금욕주의”에 대한 그의 극심한 비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이 자서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니체 특유의 여성관을 형성시킨 사건들과 배경들도 이 자서전의 곳곳에서 역력하게 확인된다.
비록 니체가 “직접 쓴 육필원고”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실 때문에 그동안 “진짜” 니체의 자서전으로 정식공인을 받지 못하는 또 하나의 비극적 운명을 겪어왔을망정, 이 자서전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들만으로도 니체를 애호하거나 니체에게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일독해볼 만한 충분하고 또 넘치는 가치들을 지닌 진귀한 보물로 평가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