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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50년이 가장 힘든 시기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4-11-10     조회 : 1,838  

필자는 1952년생인데 되돌아보면 인류역사상 가장 역동적 발전의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골라서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와서 이 시대를 살게 된 것은 축복이며 행운이다. 인류가 지상에 출현한 후 수백만 년간의 구석기시대를 지나 약 1만 년 전에 돌을 갈아 쓰는 신석기시대가 시작됐다.

지난 2000년의 세계경제사 연구에 의하면 첫 천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14~16세기부터 기술 발전으로 경제성장률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으나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성장률이 제로 수준을 조금 벗어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800년까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금 가치로 환산한 1인당 소득이 약 500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서유럽에서 겨우 1000달러를 넘어섰다. 이것이 19세기에 들어 가속화되기 시작해 20세기 전반부에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보였고 1950~2013년간에는 3.8%로 세계경제가 일찍이 없었던 고속성장을 이루게 됐다.

필자는 과거에 우리 자식들, 후손들 세대는 더 빠른 성장과 변화를 경험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지난 몇 해 여러 자료를 보며 이러한 기대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향후 40년간의 세계 경제성장률은 3%로, 2050~2100년간의 성장률은 다시 1.5%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게 성장률이 떨어지는 주 요인은 기술 발전의 속도와 인구구조의 변화에 있다. 경제성장이 가장 빨랐던 시기는 증기기관이 발명됐던 1차 산업혁명기보다 전기와 내부연소엔진이 발명된 2차 산업혁명기였다. 전기와 엔진이 상용화되고 화장실과 수도가 실내로 들어온 20세기 세계는 경제성장률의 절정을 맞게 된 것이다. 인류역사상 생산성 증가가 가장 빨랐던 시기가 1920년대에서부터 70년대까지로 추정된다. 반면에 1980년대부터 시작한 정보통신혁명은 2차 산업혁명에 비해 투자유발효과와 소득창출효과가 훨씬 떨어진다. 미래 기술혁명의 지평도 과거에 비해 훨씬 좁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과 서유럽의 성장률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오고 있다. 이미 개발된 기술을 도입해 대량투자와 생산을 해온 신흥국들의 고성장으로 그나마 세계 경제성장률의 하락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인구변화 역시 심각한 요인이다. 1960년대에 5%에 달하던 세계 출산율은 지금 2.5%로 떨어졌다. 서유럽은 향후 10년간 약 6% 인구 감소를 겪을 것으로 보이며 동유럽과 러시아에서도 이미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북미는 이민으로 인구 증가를 유지하나 속도는 크게 떨어졌으며 아시아에서는 인구가 급속히 고령화하고 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경제도약을 시작했다. 그 도약은 세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고속성장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오고 있다. 이미 크게 높아진 소득수준에 비해 신기술 개발 능력이나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며 중국과 같은 후발 신흥국들에 대한 경쟁우위가 빠르게 좁혀지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권과 언론이 경제위기란 말을 입에 달고 산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단기부양책이 답이 될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국내외에서 진행되는 중·장기적 구조변화에 대해 보다 현실적 시각을 가지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는 향후 40~50년 동안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향후 정치, 사회, 경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요소는 인구구조, 소득분배, 남북관계 변화일 것이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불확실성이 높은 데 반해 인구구조의 변화는 확실히 진행되고 있는 요소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이뤘던 빠른 성장만큼이나 향후 50년 세계에 전례가 없는 빠른 인구구조의 변화를 겪게 된다. 한국의 출산율은 1960년대의 7%에서 지금은 1.2% 밑으로 떨어졌고 평균수명은 52세에서 80세로 늘었다. 그 결과 인구구조가 1960년대의 피라미드형에서 현재의 중간이 불룩한 마름모형을 거쳐 2060년이 되면 인구 절반이 60세가 넘는 역 피라미드형으로 바뀌게 된다.

인구구조 변화는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며 정치지형을 바꾸게 된다. 이런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경제의 부상과 침체는 일본보다 더 드라마틱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정년제도, 연금제도, 임금체계, 인사관리제도, 주거제도 등 거의 모든 제도가 인구구조가 피라미드형일 때 도입된 것들이다. 2060년이 지나면 1955년부터 시작된 베이버부머들이 거의 세상을 떠나 다시 인구구조가 개선돼 나갈 것이다. 향후 40~50년이 가장 힘든 시기다. 한국경제가 더 깊고 빠른 침체를 피하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광범위한 제도개편과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조윤제/서강대 교수/중앙일보/2014.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