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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떠나시고 맞는 아침은
  
 작성자 : 허경옥
작성일 : 2014-08-20     조회 : 1,767  

교황이 우리 곁에 머무신 요 며칠은 행복했다. 아늑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겨 험한 세상을 바라보듯 해맑고 안온했다. 마음의 의탁이란 이런 것인가. 이성의 촛대만 붙들고 있는 식자나 신은 만들어진 것이라 애써 믿는 무신론자는 초월적 존재에게 마음을 의탁한 기억이 없다. 그러니 자신을 책망하고 이성의 결핍을 탓한다. 하루가 멀게 터지는 새로운 사건에 넋이 나가고 온갖 일들이 서로 엉켜 지독한 분쟁에 휘말리는 우리들 한국인의 삶이기에 더욱 그렇다. 굳이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필자에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빈자의 대부, 힘들고 아픈 사람에게 우선 다가서는 그분은 본질과 멀어진 이 시대에 그 잊힌 고향으로 귀환하는 성자였다. 세상과 등진 채 나 홀로 수양하는 여느 종교인들과는 달리 세상사의 한복판에서 소탈한 행보와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고 자본주의의 탐욕에 거침없이 일침을 가하는 일상적 현인(賢人)이었다. 사회적 주변인들에게서 예언자적 증거를 찾는 그분의 영성에 역사와 정치를 가르는 경계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세계 12억 교도들을 은총의 약속으로 이끄는 성자의 자세와 동선(動線)은 지극히 소박했다. 그 동선을 따라 인간 중심의 신천지로 진입했던 요 며칠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의 우환을 그분이 대리한 탓이다. 


 

 

오늘 밝아온 아침이 어제와 다를 리 없건만 그분이 떠난 빈자리가 유독 큰 것은 이제 남은 자의 의무가 절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의 벗들이여, 이제 혼자 가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세월호 유족들,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주민, 위안부 할머니들은 물론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모든 사람들이 받은 위안과 감동의 메시지에 보답할 아주 각별한 각오를 다질 시간인 것이다. 박해, 전쟁, 시련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어둠이 ‘불멸의 희망을 품고 있는 아침의 고요함에 자리를 내주었듯’ 이제 두려운 고통의 통로에서 서로를 지켜나갈 불멸의 등불을 켜라는 교황의 준엄한 훈령을 새기는 아침이다.

 

 

교황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배인 풍요로운 문화와 비장한 미학에 관한 찬사로 방문기를 시작했지만 한국이 더 이상 고요한 나라가 아님을 안다. 로마교황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극동의 작은 나라를 방문지로 내디딘 것은 한반도가 품고 있는 역사적 경험의 보편적 의미 때문이다. 지난 150년 동안 인류 역사를 들끓게 한 이종(異種)의 격류들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친 곳, 많은 사람이 그 와류를 헤쳐나갈 용기와 마음의 안식처를 천주에게서 구했다는 사실은 한반도가 갖고 있는 각별한 위상일 것이다.

 

 

조선은 유례없는 ‘박해의 땅’이었다. 2만 명의 신자가 참수됐다. 조선은 ‘고난의 땅’이었다. 제국통치에 36년을 신음했다. 한국은 ‘분단의 땅’이다. 200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민족은 갈라섰다. 한국은 ‘기적의 땅’이다. 잿더미에서 최고의 경제 기적을 일궜다. 박해, 고난, 분단, 기적의 격류를 모조리 겪은 나라가 지구상에 어디 있는가. 19세기 말, 고요했던 아침의 나라가 세계 현대사를 수놓은 모든 종류의 격변을 통렬하게 겪을 줄 누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그런 땅에서 수백 년 살아온 한국의 선남선녀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 사람은 여럿 있었지만,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교황이 발한 단어들이 더 가슴 깊숙이 와 박히는 것은 어쩐 일인가. 말이 향기롭고 글이 아름다운 것은 위대한 문학 이상이었다. 절망의 해독제는 교황 자신이었고 교황의 손짓, 표정, 걸음, 그리고 온화한 미소 그것이었다. 세월호 유족들의 울음이 교황의 품 안에서 비로소 승화됐다. 실업자, 미취업 청년, 노약자, 병자와 장애인의 아픔이 그의 손길로 소리 없이 스러졌다.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현존을 성모께 의탁하는 그 순간 교황과 서민들은 은총의 세계에서 얼싸안았다. 축복이 따로 없었다. 축복의 화신이 우리 곁에 계셨던 요 며칠은 그래서 행복했고 아늑했다.
 

 

그런데, 꼭 이랬어야 했는가. 이역만리에서 찾아온 분에게 우리 내부 문제까지 의탁하며 눈물을 흘려야 했는가. 꼭 그의 말과 품을 빌려 우리의 분노를 잠재워야 했는가. 사회를 끌어가는 정치인, 종교인, 명망가, 지성인들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말을 그에게서 듣고 싶어 할 만큼 우리의 정신세계는 빈곤했나. 그는 분단의 땅, 갈등하는 현실에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세계화로 조각난 분열의 상처를 연대의 실천으로 치유하라는 전언을 남기고 떠났다. 영원한 치유는 우리의 것으로 남는다. 요 며칠 교황께 의탁했던 마음을 되돌려 받는 아침,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내게 묻는다. 불명확했던 그 숙제가 이제 조금 형체를 드러내는 것도 같다.

 

 

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중앙일보/2014.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