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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이 우리의 수준을 드러낼 것이다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8-07-22     조회 : 61  

라니냐 불구 올해 비정상적 폭염
폭염 일수 많아지면 사망자 급증
2003년 유럽 8개국서 7만명 사망
절대온도보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폭염사망에 미치는 영향 더 커
자연재난 대응 능력이 사회 수준


인류가 온실가스를 대기로 배출함에 따라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다. 이로 인해 폭염이 빈번히 발생하고 그 규모와 피해가 매년 커진다. 이런 폭염이 일상이 되었기에 우리는 여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름철이면 항상 발생하는 폭염은 자연 현상이지만, 폭염 피해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이때 우리 사회의 취약성이 드러난다.

 

전 지구 평균 기온을 결정하는 것은 온난화 추세와 자연 변동이다. 현재 온난화 추세가 자연 변동을 넘어서 가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해는 자연 변동인 엘니뇨가 발생했던 2016년이었다. 자연 변동 요인을 제거하고 분석하면, 2017년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 5월까지 기온을 낮추는 자연 변동인 라니냐 영향을 받았으므로 예년보다 기온이 낮아야 한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비정상적인 폭염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폭염은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생명까지 위협하는 재앙이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의 1991~2011년 동안 폭염에 의한 사망자 발생 특성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1년간 총 442명이 온열 질환에 의해 사망하였으며 1994년에 92명으로 가장 많이 사망하였다. 폭염 일수가 많아지면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폭염 사망자 중 60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59%를 차지하였다. 이 연령에서 여성과 남성 사망자의 비율이 거의 비슷한 데 비해 60세 미만의 연령에서는 남성 사망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남성이 바깥에서 일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자연재난 대응체계가 잘 되어 있다는 선진국도 폭염 위험에 대한 사전 대비가 충분하지 못해 큰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2003년 8월 유럽에서 기온 40도는 보통이었고 최고기온이 50도까지 올라간 곳도 있었다. 이때 유럽 8개국에서 7만여명이 사망했다. 가장 피해가 심했던 프랑스의 사망자 수는 평소보다 60% 증가했다. 사망자의 3분의 1은 폭염으로 인한 고열이 원인이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힘없는 독거노인이었는데 당시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과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가?”라고 탄식할 정도였다.

 

우리나라와 유럽에서 폭염이 일어날 때 기온은 열대 지방에서 늘 발생하는 수준이다. 곧 폭염 피해는 기상학적인 요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작용함을 의미한다. 기후학적으로 선선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 폭염 피해를 더 본다. 그곳 사람들은 더위에 대해 생리적 순응도가 낮고 더위를 피하는 행동이 민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폭염이라도 피해는 더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에게 집중된다. 가난한 노인, 농부, 실외 노동자와 환자가 폭염을 피하거나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가난한 사람이 폭염 사망 위험 18% 높아


서울대 김호 교수팀은 2009∼2012년 서울의 전체 사망자 3만3천544명을 대상으로 폭염이 사망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였다. 폭염에 따른 사망위험은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또 상대적으로 녹지공간이 적은 데 사는 사람도 사망위험이 18% 상승했다. 주변에 병원 수가 적은 지역에 사는 사람의 경우에도 폭염 사망위험이 19% 높았다. 같은 온도의 무더위라도 사회경제적 수준, 주거유형, 연령층에 따라 민감도가 다르다는 것을 밝혔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1인 가구 빈곤 인구의 72%는 60대 이상이고, 2인 가구 빈곤 인구의 68%도 60대 이상의 고령자이다. 즉, 우리나라 노인은 비참하게도 대부분 가난한 독거 또는 부부 노인이다. 이 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폭염 일수가 증가하면 폭염 피해도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폭염 일수는 전국 평균 7일이다. 국립기상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21세기 말 우리나라 폭염 일수는 온실가스를 어느 정도 줄이는 기후변화 시나리오(RCP4.5)에서 13일, 그리고 전혀 저감을 하지 않는 경우(RCP8.5) 30일로 지금보다 2~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2040년대에 열사병 사망자 수가 지금보다 5~7배 많아질 것으로 예측하였다.

 

폭염은 얼마나 길게 이어지느냐가 사망자 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열에 지친 몸을 회복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폭염 피해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엔 껍데기가 약한 옥수수알 몇 개가 터지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모든 팝콘이 터지는 것처럼 폭염 피해도 급격히 발생한다.

 

폭염 적극대응 4년 뒤 사망자 1/6로 줄어


인간이 일으킨 폭염 피해는 결국 인간의 손길만이 해결할 수 있다. 서울보다 높은 위도에 위치한 시카고에서 1995년 5일간의 폭염으로 7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4년 뒤인 1999년에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 다시 발생했을 때 사망자 수는 110명에 그쳤다. 이 사례에 대해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그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을 자연재해로, 우연히 발생한 사고로, 개인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사회적인 원인을 찾고 그에 기반해 대응 전략을 마련했던 행정기관과 그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시민들이 거둔 성과였다”라고 이야기했다.

 

오늘날 자연 재난은 사회적 재난이기도 하다. 재난은 취약계층을 들여다보는 창이며 재난 대응에 있어 우리사회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또한 재난은 감추어진 정부 대응 체계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한다. 시카고 사례에서 보듯, 폭염은 우리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자연 재난이다. 정부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또한 폭염 대응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감수성이 있는가의 척도이기도 하다. 곧 폭염이 우리의 수준을 드러낼 것이다.

 

조천호/대기과학자/2018.7.20./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