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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갑질 근절’이 개혁의 ‘킹핀’인가?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7-08-28     조회 : 15  

나는 우리 사회의 암적 요소라 해도 좋을 갑질을 근절하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개혁의 킹핀이라고 생각한다. 갑이 되기 위한 각자도생적 투쟁은 고도성장이 끝난 오늘날 한국인 대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재앙이 되고 있다. 갑질은 어느덧 한국적 삶의 기본 문법이 되고 말았다.

 

볼링을 할 때엔 10개의 볼링핀 가운데 숨어 있는 5번 핀, 즉 킹핀을 공략해야 도미노 효과가 일어나 10개의 핀을 모두 쓰러트려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다. 이런 이치를 국가 정책에 적용해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 가운데 킹핀을 찾아내 집중 공략함으로써 파급효과를 거두는 걸 가리켜 ‘킹핀 이론’이라고 한다. 과연 현실 세계에 그런 킹핀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정책엔 집행의 우선순위와 더불어 자원집중의 경중을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는 데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이 이론의 신봉자라고 해서 최근 다시 화제가 되었는데, 부디 그가 킹핀을 제대로 찾아내 잘 공략하길 바란다.

 

킹핀 이론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인의 행복지수와 사회적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역사적 축적과 구조적 구축의 결과로 나타난 이런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킹핀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킹핀 이론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엔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의 암적 요소라 해도 좋을 갑질을 근절하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개혁의 킹핀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사회정의 구현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왜 그런가?

 

지난 7월13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중소 사업자 단체 간담회에서 갑질의 본질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그는 “하도급법을 위반한 사업자의 79%가 중소 사업자”라며 “중소 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 사업자들을 상대로 불공정 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무조건 보호해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한국의 기업 생태계는 약자에게 갑질을 하는 걸 전제로 형성된 것이어서 갑질을 하는 것을 무슨 경제법칙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갑질이 사라지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갑은 을을 착취하고 을은 병을 착취하고 병은 정을 착취하는 연쇄적 먹이사슬 구조하에선 법과 윤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근대화 자체가 그런 약육강식의 문법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었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개인과 가족 차원에선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을 따라 떵떵거리며 살아보자는 꿈을 안고 전투적인 삶을 살아온 게 아니었던가. 신분제는 120여년 전에 철폐되었다지만, 신분제의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 그 알맹이는 지금도 건재하다. 한국의 성공한 엘리트들이 평소엔 제법 점잖은 척하는 모습을 유지하다가도 자신의 신분이 인정을 잘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입버릇처럼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을 거칠게 내뱉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갑이 되기 위한 각자도생적 투쟁이 무조건 나쁘기만 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고도성장이 끝난 오늘날엔 한국인 대다수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재앙이 되고 있다. 갑질은 조직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조직 내에도 존재하며, 조직과 무관한 개인들 사이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갑질은 어느덧 한국적 삶의 기본 문법이 되고 말았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듯이, 오늘도 수많은 직장인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이유로 갑질을 견뎌내고 또 그 원리에 따라 갑질을 하고 있다. 그런 삶에서 자라나는 건 ‘학습된 무력감’이다. 시민들이 능동적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대신 포기, 체념, 냉소주의를 습관적으로 갖게 되는 ‘무력감의 사회화’야말로 한국인의 행복지수와 사회적 신뢰도를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트린 주범 중의 하나다.

 

“자기 권리를 옹호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짓누르는 힘은 사실상 무한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바로 갑질이 창궐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갑질을 해도 괜찮더라는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갑질의 빈도를 늘리고 강도를 높여 나가기 마련이다. 어느 대기업 임원은 갑질과 일탈을 일삼는 재벌 2·3세를 두고 ‘체제 전복 세력’이라고 규정했다는데(<조선일보> 2016년 7월13일치),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본의 아니게 그런 ‘체제 전복 세력’에 가담하는 보통사람이 많다. 무력한 개인이 갑질에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저항을 돕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갑질 근절’을 사회개혁의 킹핀으로 삼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교 교수/2017.8.27./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