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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부러운' 미국식 민주주의/'폭력의 민주...
  
 작성자 : 허여사
작성일 : 2017-02-08     조회 : 160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했다. 그런데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발하는' 미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마디로 너무 너무 부럽다.

 

현직 외교관 중 약 1,000여명이 반대의견을 밝혔다. 뉴욕 시카고 등 400여개 도시는 행정명령 집행을 중단하며 '피난처'를 자처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동시에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인데, 만일 한국에서 박근혜와 이명박의 '매우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현직 공무원이 반대입장을 밝히고, 기업들이 시민단체를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중앙정부 정책에 반대되는 피난처를 제공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사설 등에서 뭐라고 썼을까? '안 봐도 비디오'이다.

 

도대체 미국은 왜 한국과 다를까? 공무원, 지방정부, 기업들이 일치단결해서, 트럼프의 '똘아이짓'에 반발할 수 있는 미국적 저력은 어디에 연유하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그 핵심이 '폭력을 국민에게 돌려준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막스 베버는 국가의 본질은 '폭력의 합법적 독점'이라고 했다. 즉, 국가의 실체는 폭력이다. 국가가 확보한 폭력수단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첫째, '신체적 폭력'이다. 2) 둘째, '금전적 폭력'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신체를 위협하는 폭력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걸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군대, 검찰, 경찰, 법원이다. 그리고 이런 폭력을 '집행'하는 이들이 관료이다. 신체적 폭력의 경우 군인, 검사, 경찰, 판사 등이 폭력의 집행을 관장하는 관료들이다.

 

국가는 '국민들의 금전적 재산을 위협하는 폭력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걸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관세청 등이다.

 

요컨대, '국가의 민주화'라는 것은 '폭력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87년 6월 항쟁에서 '고작' (폭력의 최대 집단인) 군인들의 정치권력 장악만 금지시킨 셈이다. 6월 항쟁 이후에, 군인들이 아닌 폭력을 가진 관료집단들은 여전히 멀쩡히, 폭력에 대한 '독점적'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국가의 민주화'는 '폭력의 민주화'라고 했는데, 그럼 '폭력의 민주화'는 도대체 뭔가?

 

▶ 첫째, '폭력의 분권화'이다. 마치 삼권분립처럼 폭력수단을 가진 (정부)조직의 권한들을 분권화해야 한다. 이는 미국을 생각해보면 자명해진다. 미국의 군대는 민간인이 국방부장관을 하며 지휘통제한다. 검찰은 검사장 직선제를 하며, 경찰은 검경 수사권 분리가 실현되며, 판사는 배심원제를 하고 있다. '폭력'을 가진 조직인 군대-검찰-경찰-법원의 권력이 모두 '분권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둘째, 폭력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폭력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 도대체 뭔가? 신체적 폭력과 금전적 폭력에 대한 '권한 주체'가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핵심은 강력한 민법을 통해서 구현된다. 즉,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증거개시권) 제도를 통해 구현된다.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법과 민사소송법의 내용이다. 그리고 상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편의상, 폭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폭력의 민주화 3종세트'라고 표현하기로 하자.) '폭력의 민주화 3종세트'는 왜 중요한가? 즉, 민법, 민사소송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제,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한가?

 

관료들이 독점한 폭력수단을 국민들과 분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앞서 말한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이 '관료들끼리' 폭력권한을 나눠먹기하는 것인 반면, 강력한 민법의 도입은 '관료와 국민들 사이에서' 폭력권한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개혁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관료들의 폭력적 권한을 축소하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동시에 국가의 '폭력적 본질'을 대폭 완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기능은 그대로 존재한다. 관료가 아닌 국민들에 의해.)

우리는 자본주의 + 국가에서 + 개인으로 살고 있다. 정치사상사의 역사에서 '자본'의 폭력성을 주목한 대표적인 이념은 사회주의였고, '국가'의 폭력성을 주목한 대표적인 이념은 자유주의였다.

 

국가 자체가 폭력적 존재이다. '국가'라는 괴물과 씨름을 했던 자유주의자들의 문제의식이 옳았다. '국가'를 키우는 것은 폭력의 규모와 집중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적 맥락에서 국가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누구였던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폭력수단'의 집중 및 집적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확장의 실천 주체는, 먼저 '박정희 세력'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북한의 수령통치를 모방해서 군대-국정원-기무사-검찰-여당-청와대 등의 모든 감시와 폭력권력을 '대통령 한 명'에게 보고하고 지휘하는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양날개』 라는 책에 잘 나와있다.)

 

그런데, 한국적 맥락에서 국가=폭력조직을 키운 것은 박정희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국가'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NL(민족해방파)과 PD(민중민주파) 역시도 의도했든 아니든 국가=폭력=집중=규모를 키우는 것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요컨대, 한국에서 '국가=폭력'의 집중과 집적은 '박정희+NL+PD의 결과적인 합작품'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주의적' 우파와 '국가주의적' 좌파라는 점이다.

 

이들은 냉전우파와 냉전좌파라는 대립관계를 형성했지만, 다른 한편 '국가의 강화=폭력의 집중'이라는 점에서는 '동지적 관계'였던 셈이다.

 

실제로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김일성의 '수령체제'를 모방한 것이었다. 김일성이야말로 박정희 모델의 원조였다. '새누리당 꼴통 친박'의 행태와 통합진보당 경기동부의 행태가 비슷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양대 집단은 서로 싸우지만, '사상적 기원'이 같다.)

 

이러한 '국가의 비대화=폭력의 비대화=관료의 비대화'에 대해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주화세력은 '자유주의적 관점이 결핍된' 민족주의적+사회주의적+민중주의적 운동권 진보세력이 압도적 다수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예컨대 대기업이 소비자에게 갑질을 한 사건이 터지면 진보/보수, 정치권의 여당/야당, 보수언론/진보언론, 보수적 시민단체/진보적 시민단체를 막론하고 모두가 '합심해서' 솜방망이 처벌은 문제가 있으니 '강력한 처벌, 예컨대 과징금의 강화'를 주장하게 된다.

 

그런데, 과징금을 1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차피 '폭력수단에 대한 권한=규제권한'은 관료들만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 입장에서는 '매수비용이 1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라가는 의미만 갖게 된다. 그리고 관료 입장에서도 '자신의 매수몸값이 1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올라가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안이 바로 '과징금 인상'이다. '과징금 인상=매수가치 인상=낙하산 가치 인상=합법적 부패의 확대재생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군부'를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몰아낸 것은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가 처음이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기준으로 하면 무려 32년이 걸렸다. 그리고 유신체제가 시작된 1972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21년이 걸렸다.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국가(=관료)가 독점한 '폭력'(수단)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의 진짜 '하부 토대'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국진보는 외세와 맞서 싸우는 민족주의 그리고 자본의 폭력성과 맞서 싸우는 사회주의 전통은 강했지만, '국가의 폭력성'과 대결하는 자유주의 전통은 매우 취약했다.

 

이러한 한국진보의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해, 한국은 유독 '강한 국가, 허약한 시민사회, 나약한 개인'의 사회경제 체제로 귀결되었다. 국가의 폭력성과 대결하려는 '자유주의적 문제의식 없는' 진보-좌파의 비극이며, 필연적 귀결이었던 셈이다.

 

맑스는 문헌 곳곳에서 '국가의 해체'를 주장했고, 동시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돌이켜보면, 맑스가 '국가의 해체'라는 주장을 할 때, 이때 '국가'의 의미는 막스 베버와 동일한 의미였다. 즉, '폭력 기구'로서의 국가였다.

 

그런데, 만일 폭력이 삼권 분립처럼 정부 부처끼리 분권화되어 있고, 그리고 심지어 '관료와 국민들' 사이에서도 분권화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국가가 상당히 해체된' 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남는 국가는 '폭력조직으로서의 국가'가 아닌 '행정기구로서의 국가'가 된다. 철학적-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의미의 국가이다. 동시에 '작은 국가 + 큰 시민사회' 조합을 갖게 된다.

 

그런 나라가 어디일까? 바로 미국이다. 유럽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폭력기구'의 분권화가 더 잘 이뤄졌기 때문이다. (검사장 직선제, 검경수사권 분리, 배심원제, 강력한 민법, 강력한 상법 등..)

 

맑스는 노예해방을 위해 노력한 링컨이 죽었을 때, '친애하는 노동계급의 벗'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추도사를 쓴 적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혁명을 비롯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극찬하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2017년 지금 현재도, 실은 맑스가 주장한 '국가의 해체'가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는 나라 역시 미국이다. 아마도, 맑스가 '국가의 해체'를 강조했던 바로 그 이유는, 혁신경제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유와 같을 듯 하다.

 

트럼프가 히틀러같은 극악한 지랄을 해도, 미국의 민주주의적 저력, 더 정확하게는 폭력이 분권화되고, 국가의 폭력적 권한이 상당히 해체된> 미국 민주주의의 '하부 토대'가 단단하기에, 트럼프는 히틀러처럼 되고 싶어도 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게 1930년대 독일과 2017년 미국의 차이이기도 하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이기도 하다.

 

폭력을 분권화하는 것. 그 중에서도 '강력한 민법'을 통해 폭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 그것이 87년 6월 항쟁의 '못다한 꿈'을 이루는 진짜 핵심이다.

 

그러한 우리의 꿈을 가로막는, '적대적 동맹군들'의 핵심은 (서로 매수하고, 매수당하는 관계인) 관료와 자본의 연합권력이 될 것이다.

 

'박근혜 이후, 민주주의'를 위한 진짜 전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폭력을 분권화하는 것, 폭력을 국민에게 되돌려주는 것. 그리하여 (폭력독점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의 해체'를 실현하는 것. 여기가 바로 '로두스 섬'이며, 이 지점이 바로 민주주의의 진짜 싸움터이다. 그것이 비록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최병천/국회의원 전 보좌관/2017.2.5.